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556
한자 晩溪 實記
영어공식명칭 Mangyesilgi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 『만계 실기』 간행
성격 문집
저자 감정식
간행자 감경원
권책 3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0.0×28.0㎝|15.5×20.5㎝[반곽]
어미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만계 실기(晩溪實紀)
판심제 만계 실기(晩溪實紀)

[정의]

근대 함안 출신의 유학자 감정식의 문집.

[저자]

감정식(甘禎植)[1878~1951]의 본관은 창원이며, 자는 기찬(基贊), 호는 만계(晩溪)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화천리에서 태어났다. 진사를 지낸 감경무(甘景茂)의 11세손이다. 어릴 적부터 생업을 일구느라 글공부에 전념하지는 못했다. 일제 강점기 말 학정이 극심할 적인 1938년 사재를 털어 인근의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는데, 이에 고을 사람들이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38년 겨울 혜휼비(惠恤碑)를 세웠고, 1959년에 파손된 비석을 중건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문집 곳곳에 여러 인물들이 다양한 기록으로 증언하고 있다. 1942년 마산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편찬/간행 경위]

『만계 실기(晩溪實記)』의 간행을 주도한 인물은 감정식의 큰아들 감경원(甘炅源)으로 감정식이 생전에 남긴 글들을 수집하여 장일상(張一相), 황철준(黃喆準), 김종하(金鍾河)의 서문과 배문회(裵文會)[1900~1984]의 발문을 받아 1960년에 간행하였다. 장일상은 1957년 2월에, 김종하는 1958년 3월에 서문을 작성하였고, 배문회는 1960년 3월에 발문을 작성하였다.

[형태/서지]

3권 1책으로,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이며,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0.0㎝, 세로 28.0㎝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5.5㎝, 세로 20.5㎝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만계 실기(晩溪實紀)'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는 감정식이 지은 시(詩), 제문(祭文), 행장(行狀)이 수록되어 있고, 권2와 권3에는 감정식과 관련된 글을 수록하였다. 권1의 시는 총 6수이며, 제문이 1편이다. 감정식이 지은 행장은 5편인데 모두 자신의 11대조, 증조부, 조부, 부친의 일생을 서술한 행장류이다.

권2에는 감정식의 일생을 서술한 가장(家狀), 행장, 묘갈명(墓碣銘), 묘지명(墓誌銘), 유사(遺事)가 수록되어 있는데, 가장은 감정식의 큰아들 감경원이 지었고, 행장은 1957년 11월 이현섭(李鉉燮)이, 묘갈명은 감기현(甘麒鉉)이, 묘지명은 1958년 11월 안종희(安鍾禧)가, 유사는 1959년 2월 김용희(金容熙)가 지었다. 그 다음에 「혜휼비명(惠恤碑銘)」과 「비음기(碑陰記)」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1938년 겨울 칠원의 인사들이 감정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에 새겨진 글이다. 1959년 2월 안종희가 지은 「비음기」에 따르면, 2차 세계 대전 무렵 일제의 학정이 심해지자 감정식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칠원 고을에 거주하던 452호를 구휼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을의 인사들이 1938년 이 비석을 세웠고, 그 뒤 1950년 6·25 전쟁으로 비석이 손상되자 1959년 무렵 다시 세웠다고 한다. 그 다음 수록된 「비중건 고유문(碑重建告由文)」은 이 비석을 중건할 적에 주시호(周時顥)가 지은 글이다. 그 뒤의 「비중건 낙성운(碑重建落成韻)」은 비석이 중건될 적에 여러 인물들이 지은 시를 모아 놓은 것이다.

권3에는 감정식이 환갑날 아침에 지은 시에 여러 인물들이 차운(次韻)한 시가 수록되어 있다. 감정식은 환갑이 되던 1938년에 자녀들이 잔치를 벌이려 하자 그만두게 하고 그 비용으로 인근 사람들을 구휼하였는데, 이때 지은 시에 여러 인물들이 차운하여 감정식의 공덕을 기리고 환갑을 축하하였다.

[의의와 평가]

『만계 실기』함안군 칠북면 지역에 살았던 감정식에 관련된 글을 모은 것이다. 특히 감정식 생전의 업적인 1938년 구휼에 관련된 기록을 빠짐없이 모아두고, 그에 대한 의의를 감정식의 전기 자료 및 서문 3편과 발문 1편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함안 및 인근 지역의 많은 인물들이 감정식의 공덕을 추숭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