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485
한자 趙大 - 祠堂
영어공식명칭 Jo Dae Shamanist Shrine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757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홍성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조대 각시 사당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757지도보기
성격 사당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에 있는 고려 시대 사당.

[개설]

조대 각시 사당에는 관련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시대 조 대감(趙大監)[성명은 조덕(趙德)]이 살았는데, 학문과 도덕을 겸비하였을 뿐 아니라 무예(武藝)에도 정통하여 북방 여진족(女眞族)의 침공을 여러 번 격퇴한 공로로 국가에서 사당(祠堂)을 관로 변(官路邊)에 세워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사당 앞에는 어떠한 고관대작(高官大爵)이라도 하마(下馬)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었으며 말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관들이 때마다 하마하기를 귀찮아하던 차에 교만방자한 한 고관이 통과할 즈음에 시위자(侍衛者)가 하마할 것을 아뢰자 고관이 고약한 버릇이라며 하마는커녕 도리어 방화 소각(放火燒却)하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종자(從者)가 두려움에 우물쭈물하며 소각하지 않자 고관은 대로하여 더욱 엄한 불호령을 내려 하는 수 없어 사당을 소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사당을 불지른 그날 밤에 고관은 아무런 이유 없이 급사(急死)하였고, 불 지른 종자들은 병에 걸려 거동을 못하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대경실색하여 즉시 사당으로 달려가 무지한 인간의 잘못을 뉘우치고 빌면서 성대한 기원제를 올리고 불공(不恭)을 사하여 줄 것을 기원하니 죽은 고관은 되살릴 길이 없으나 거동 못하던 종자들은 즉시 쾌차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는 다시 그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관청과 인근 주민들이 관로를 피하여 현 위치인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조남 산성 아래에 사당을 중건(重建)하였는데 공적(公的)인 치제는 없으나 인근 주민 중에 신봉자가 많아 치성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 대감이 어쩌다 조대 각시로 변하였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전하지 않으나, 조 대감에게 부인이 두 명 있었는데 두 부인을 조 대감과 같은 사당에 모셨으며, 사당에 치성드리는 신자 중에는 여인들이 많아 조 대감보다 대감 부인들을 숭배하였으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이 치성을 드리면 득남의 효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조 대감 부인이 조 대감 각시[이 지방에는 시집간 여인을 각시라고 부름]로 변하고 다시 ‘감’ 자를 뺀 조대 각시로 불리워진 것으로 보인다.

[위치]

조대 각시 사당은 함양군 가야읍 광정리성산 산성의 동문 터 옆에 있다.

[변천]

오랜 세월에 훼손되었으나, 중수하다가 오히려 변고를 당하지 않을까 겁먹어 손을 대지 못하던 것을 조남사에서 중수하여 관리하다가 옛 사당은 산신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금은 무당이 성산 산성 동문 터 옆 성벽 위에 스레트로 옮겨 지어 관리하고 있다.

[현황]

현재 콘크리트 벽돌과 슬레트 지붕으로 된 1칸짜리 건물이다.

[의의와 평가]

조대 각시 사당은 지역에 내려오는 설화와 관련된 장소로 관련 연구에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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