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리 분묘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443
한자 篁沙里 墳墓群
영어공식명칭 Graves in Hwangsa-r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 산34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김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1년 2월 19일~1991년 3월 30일 - 황사리 분묘군 경상 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 실시
소재지 황사리 분묘군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 산34지도보기
성격 고분군
양식 널무덤|독무덤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위치]

황사리 분묘군(篁沙里墳墓群)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 산34번지 매곡 마을 일대의 나지막한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5년 이래 경상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함안 서부 지역에 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1991년 2월 19일부터 같은 해 3월 30일까지 경상 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사 결과 널무덤[목관묘], 덧널무덤[석관묘]과 독무덤[옹관묘]이 확인되었다.

[형태]

덧널무덤은 풍화 암반층을 파서 내부에 시신을 안치하고 유물을 부장한 뒤 목관을 설치하여 나무 뚜껑[木蓋]을 덮고 그 위에 약간의 봉토를 쌓아서 만들었다. 이곳의 토질상 내부 구조를 정확하게 밝히기 어려운 유구가 많았다. 특히 관의 사용 여부에 대한 흔적도 찾을 수 없으며, 어떤 작은 유구는 널의 사용마저 의심스러운 상태였다. 다만, 사람 뼈와 유물이 비교적 잘 남아 있었던 김해 예안리 덧널무덤의 조사 결과 곽은 있으나 관이 없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황사리 분묘군의 덧널무덤에서도 널이 사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독무덤은 덧널무덤과 같은 방향으로 작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큰독을 횡으로 설치하였다. 파괴가 심해 하나의 독[單甕]을 썼는지, 독을 서로 맞대어[合口甕] 썼는지, 또 어떤 유물을 부장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유물은 극심한 도굴과 훼손으로 인해 대부분 없어져서 부장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와 철기, 장신구 등이다.

[출토 유물]

토기는 모두 141점이 출토되었다. 와질 토기는 둥근바닥 긴 목 항아리[원저 장경호]뿐이며, 연질토기는 옹과 굽다리 접시[고배], 짧은 목 항아리[단경호] 등인데 그 수량은 적다. 경질 토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기종은 통형 굽다리 접시, 화로 모양 토기, 짧은 목 항아리, 굽다리 곧은 목 항아리[대부직구호], 손잡이 달린 술잔[파배], 자루 달린 사발[파수부발], 굽다리 자루 달린 잔[대부파수부배], 대접 등 비교적 다양하다. 철기는 모두 63점으로 촉, 낫[겸], 손칼[도자], 부, 모 등이며 이 가운데 촉이 대다수인 47점을 차지한다.

[현황]

최근의 지표 조사 결과 발굴 구역 외곽에서 다수의 도굴 갱이 확인되었으며, 도굴 갱 내에서 짧은 목 항아리와 독[甕] 등의 유물을 채집할 수 있었다. 이 밖에 정선부의 경작지 둑에는 밭에서 출토, 제거된 것으로 여겨지는 큰독[大甕] 조각들이 다수 흩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황사리 분묘군에서 피장자가 높은 신분의 소유자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는 없다. 따라서 고분군에 피장된 사람들은 대개 이 지역에 살았던 일반인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몇몇 유구에서는 다른 무덤들에 비해 약간 많은 철기가 부장되어 있기도 해서 차이는 있다. 따라서 황사리 분묘군 피장자들은 이곳에서 고식 도질 토기를 만들면서 생활하였던 일반인들과 촌주(村主)급으로 생각되는 소수의 지배자들로 구성된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반적으로 황사리 분묘군은 아라가야(阿羅加耶) 지역의 하위 고분군으로서 조성 연대는 토기 자료의 검토 결과 4세기 전반에서 5세기 초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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