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상팔국 전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260
한자 浦上八國 戰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홍성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209년연표보기 - 포상팔국이 아라가야를 침입하였지만 신라의 구원으로 패배
종결 시기/일시 212년연표보기 - 골포국 등 3국이 갈화성[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을 공격하였으나 신라에 패배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물계자(勿稽子)|태자 우로(于老)|이벌찬 이음(利音)|가라 왕자

[정의]

209~212년 골포국을 비롯한 포상팔국이 아라가야를 침입한 사건.

[개설]

변한(弁韓)에 소속된 12국은 중국 군현과의 교역을 통해 선진 문물을 수입하여 정치적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3세기 전반 후한(後漢)이 멸망하게 됨으로써 동북아시아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313년, 314년의 낙랑(樂浪)과 대방(帶方)의 축출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변한의 여러 나라들은 교역을 통한 성장보다는 농경지 확보를 통한 지속적인 성장을 지향하게 되었다. 즉 내륙 진출로에 해당하는 함안 지역의 아라가야(阿羅伽倻)[아라국, 안야국]를 골포국·고사포국[고자국]·사물국·칠포국·보라국 등 8국이 침입하였다.

하지만 흔히들 포상팔국(浦上八國)이 김해구야국(狗倻國)을 공격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전쟁 이유는 김해 지역이 독점하고 있는 교역권을 빼앗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포상팔국은 해안가에 위치해서 교역을 통해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역권의 확보가 큰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내륙으로 진출하려는 목적으로 아라가야를 공격하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역사적 배경]

변한의 12국은 중국 군현과의 교역을 통하여 성장하였지만 3세기 전반에 후한이 멸망하면서 변한의 여러 나라들은 새로운 방향에서 정치적 성장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즉 진한(辰韓)의 경우 사로국(斯盧國)이 진한 제국을 통합하는 과정처럼, 변한에서도 정치 집단 사이에서 전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포상팔국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경과]

포상팔국이 두 차례에 걸쳐 아라가야와 갈화성[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을 공격하였지만 신라의 구원 등으로 패배하였다. 209년 처음 발생한 포상팔국 전쟁은 보라국, 고자국 등의 8국이 아라가야를 공격하였으나 신라가 아라가야를 구원해 패배하였고, 3년 뒤인 212년 골포국 등 3국이 갈화성을 침입하였으나 역시 신라 군대에 패배하였다.

[결과]

아라가야는 포상팔국의 침입을 막아냄으로써 정치적 성장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4세기 함안식 토기의 분포권이 함안군 가야읍 지역과 군북면 지역을 벗어나서 확대되고 있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포상팔국 지역의 일부가 아라가야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됨으로써 아라가야는 바다를 통한 교역로를 확보하게 되어, 농업 외에 인근 국가와의 교역도 가능하게 되었다. 패배한 포상팔국은 아라가야 영역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4세기 이후 새로운 정치 집단으로 발전되어 아라가야와 함께 가야 후기를 구성하는 정치 집단으로 변천하였다.

[의의와 평가]

포상팔국 전쟁에서 아라가야가 승리하게 됨으로써 가야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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