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군 읍지』[1899]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096
한자 咸安郡邑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홍성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99년연표보기 - 『함안군 읍지』[1899] 편찬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향토지
편자 함안군
표제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

[정의]

1899년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편찬된 종합 인문 지리서.

[개설]

함안 지역에는 일찍이 변진안야국(弁辰安耶國), 아라가야(阿羅伽倻), 아시량군(阿尸良郡), 함안군(咸安郡), 함주현(咸州縣)과 함주군(咸州郡)이 설치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했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은 병곡면(竝谷面)을 비롯한 18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899년을 기준으로 4,461호에, 남자 1만 175명, 여자 7,410명으로 총 1만 7585명이었다. 1898년에 한전(旱田)은 1,631결 52부이고, 수전(水田)은 1,708결 37부 4속이었다. 전세(田稅)는 쌀 509석 2두 3도 7합에, 콩 734석 5두 1도 1합이었다.

1786년에 편찬된 『함안군 읍지』와 비교했을 때, 호구는 714호, 인구는 5,243명이 감소하였다. 또한 한전 및 수전, 전세 모두 급감한 것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함안군이 많이 쇠퇴한 것으로 생각된다.

[편찬/간행 경위]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1899]는 대한 제국 시기인 1899년에 각 지역의 통치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읍지 상송령(上送令)이 내려지자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기존의 『함주지(咸州誌)』 이래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편찬하였다. 원래 제목은 『경상도 함안군 읍지(慶尙道咸安郡邑誌)』이다.

[서지적 상황]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도서 번호 10879]에 보관되어 있다.

[형태]

한문으로 쓰여진 필사본이다. 표지 지질(紙質)은 능화 문황지(菱花紋黃紙)이고, 본문은 저지(楮紙)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침선장(五針線裝) 형식으로 제본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30.5㎝, 세로 52.3㎝이고, 1책 30면이다. 판식은 주사란(朱絲欄), 사주 쌍변(四周雙邊)이며,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일정하지 않다. 안쪽에는 ‘조선 총독부 도서지인(朝鮮總督府圖書之印)’과 ‘서울 대학교 도서(서울大學校圖書)’라는 2개의 인장이 있다. 표제는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목차는 없고, 처음에 채색으로 된 함안군의 도설 지도가 1장[2면] 첨부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함안군은 김해진관(金海鎭管)으로, 사주 경계(四周境界)를 표시한 것을 시작으로 함안군의 역사와 유관 유물·유적, 각종 행정 제도와 조세를 포함한 재정 정보, 성씨와 풍속, 자연환경, 각종 관방 시설의 위치와 내력,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산, 지역과 관련된 인물 정보, 문학 작품 등에 대한 종합 정보를 상세하게 수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함안군 읍지』[1899]는 19세기 함안의 지역상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기본 자료이다. 『함안군 읍지』[1899]는 그 이전에 편찬된 『함주지』,『여지도서(輿地圖書)』,『함안군 읍지』[1786] 등과 비교 분석으로 조선 중·후기 함안 지역의 변화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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