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함안 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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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민족 해방 운동가. 강대호(姜大浩)는 1925년 재창립된 함안 청년회 창립 준비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함안 청년회는 본래 1920년 창립되었으나 1923년 이후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이에 강대호를 중심으로 이규석(李圭錫), 조진규(趙珍奎), 조한휘(趙漢輝) 등이 참석하여 1925년 11월 29일 함안 공립 보통학교에서 함안 청년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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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협동조합. 협동조합 운동은 1920년대 전반에 일본의 산업조합론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다. 이 운동에는 3·1 운동 이후 각 지역의 청년회와 구락부를 주도한 지역 유지들과 지식인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1920년대 전반기에 국내에서 나타난 산업 조합의 유형은 일본처럼 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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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청년회가 주도하여 설립 운영한 극단. 1925년 이후 재창립 된 함안 청년회가 운영한 극단으로서, 함안 유치원과 노동 야학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지역 유지들의 발기로 1920년에 설립된 함안 청년회가 구성원들이 가지는 한계로 인해 그 활동이 미미해지게 되었다. 이에 1925년 11월 29일 변화를 모색하는 혁신 대회가 함안 공립 보통학교에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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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신간회 함안 지역 지회. 중국의 항일 전선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에 영향을 받아 1927년 2월 15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통일 전선 단체인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신간회는 1927년부터 1931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130여 개의 지회를 갖춘 회원 4만 명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신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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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함안 지역의 역사. 일제 강점기 함안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에 대한 저항이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3·1 운동의 경우 어느 지역보다 치열하게 전개되어 일제 무력에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았고,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식민지 민족 해방 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1914년 3월 1일 부령(府令) 제111호로 상봉면·하봉면·사봉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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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청년회와 군북 청년 회의 임원으로 활동한 인물. 조용복(趙鏞濮)은 함안군함안 청년회의 재무 부장을 역임하였다. 함안 청년회는 1920년 7월 30일 함안읍사립 안신 학교에서 ‘품성 향상, 지식 계발, 체육 장려, 산업 발달, 풍속 개량’ 등 5대 목적을 표방하며 창립되었다. 야학 강습소를 열어 일어와 산술을 가르쳤다. 정확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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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 함안 지역은 일제 식민지 지배 체제에서 독립운동이 힘차게 지속적으로 일어난 지역이다. 1919년 함안읍 만세 운동, 군북 시장 만세 운동 등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났고, 1920년대에는 함안 형평사, 신간회 함안 지회 등을 통한 항일 사회 문화 활동이 활발하였다. 또한 농민 조합 등을 통한 반일 활동도 빈번하였다. 조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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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읍 만세 운동은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대산면에 사는 안지호(安知鎬)와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면서 거행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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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소년 운동 단체. 국내에서 소년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3·1 운동 이후의 일이다. 만세 운동에 참여한 보통학교 학생들이 소년 단체를 만들면서 소년회 운동이 시작되었다. 천도교는 1921년 4월 천도교 청년회 포덕부 안에 소년부를 설치했다가 5월에 천도교 소년회를 설립했다. 1922년 5월 1일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날 행사가 천도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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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3·1 운동은 이후의 민족 해방 운동이 노동, 농민, 여성, 청년 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지배 엘리트들이 주축이 된 청년 단체들이 대거 생겨났다. 1920년 12월 1일 120여 개의 청년 단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에서 조선 청년회 연합회가 개최되었다.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