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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오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385
한자 雲塢集
영어공식명칭 Unojip
이칭/별칭 『운오 문집(雲塢文集)』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운곡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경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 『운오집』 간행
소장처 동아 대학교 한림 도서관 - 부산광역시 사하구 낙동대로550번길 37[하단동 840]
소장처 고려 대학교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안암동5가 1-2]
소장처 성균관 대학교 존경각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구 성균관로 25-2[명륜3가 52-16]
성격 문집
저자 조성숙
간행자 조영규
권책 5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0.3×30.3㎝|17.2×21.0㎝[반곽]
어미 상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
권수제 운오 문집(雲塢文集)
판심제 운오 문집(雲塢文集)

[정의]

191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성숙의 문집.

[저자]

조성숙(趙性璹)[1843~1898]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성집(聖執), 호는 운오(雲塢)·황연(况淵)·취방(醉放)이다. 조려(趙旅)의 14세손이고, 아버지는 조달식(趙達植), 어머니는 이유간(李有幹)의 딸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부인은 정광덕(鄭匡悳)의 딸인 해주 정씨(海州鄭氏)와 이현주(李鉉周)의 딸인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고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진주의 노응규(盧應奎) 의병장에 의탁하여 의병 활동을 하려 했으나 의병 해산령이 내려져 무산되었다. 만년에 함안군자양산(紫陽山) 아래에 청풍루(淸風樓)를 지어서 주자상(朱子像)을 모시고 강학을 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조성숙의 아들 조영규가 가장(家狀)을 지어 1901년에 정재규에게 행장(行狀)을, 최익현(崔益鉉)에게 묘갈명(墓碣銘)을 받았고, 1911년에 『운오집(雲塢集)』을 간행하였다. 『운오 문집(雲塢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5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이며, 상내향 이엽 화문 어미(上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0.3㎝, 세로 30.3㎝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7.2㎝, 세로 21.0㎝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운오 문집(雲塢文集)'으로 되어 있다. 동아 대학교 한림 도서관, 성균관 대학교 존경각, 고려 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김도화(金道和)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詩) 79제(題)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합강(合江)」, 「용화산 유감(龍華山有感)」 등 함안 지역의 명승지를 노래한 시들이 있다. 특히 「용화동범시(龍華同泛詩)」는 1607년(선조 40) 봄에 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 등 선비 35인이 함안군용화산(龍華山) 아래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즐긴 일을 본받아, 조성숙 역시 용화산 아래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1607년 그날의 일을 회고하며 지은 시이다.

권2에는 조성가(趙性家)·허유(許愈) 등에게 보낸 편지 32편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여허후산유 정노백헌재규□갑오(與許后山愈鄭老栢軒載圭□甲午)」는 조성숙이 허유와 정재규 두 사람에게, 세태가 급변하는 오늘날에 유학자가 지녀야 하는 용기는 공자(孔子)의 용기나 증자(曾子)의 용기와는 달라야 하지 않은가에 대해 물은 것이고, 이에 대한 두 사람의 답변이 덧붙여 있다. 또한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에 대한 격분과 의병에 가담하려고 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권3에는 기문(記文) 1편, 발문(跋文) 1편, 제문(祭文) 8편이 실려 있고, 권4 부록에는 「청풍루기(淸風樓記)」, 「황연시후서(况淵詩後敍)」, 가장이 실려 있고, 권5 부록에는 행장과 묘갈명이 있으며, 책 끝에는 이준구(李準九)의 발문이 있다.

[의의와 평가]

『운오집』은 개항기 단발령 시행으로 인한 함안 및 인근 지역의 상황과 유학자들의 동태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자, 조성숙의 학문과 사상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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