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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 조응경의 효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330
한자 感察 趙應卿- 孝誠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 - 「감찰 조응경의 효성」『함안의 구전 설화』에 수록
성격 설화|민담|인물담|효행담
주요 등장 인물 조응경|어득강
모티프 유형 일찍이 부모를 여읜 조응경의 효행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조응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감찰 조응경의 효성」은 조실부모(早失父母)한 까닭에 부모의 얼굴을 알지 못함을 슬퍼하여 초상화를 그려 제사 때에는 반드시 이 그림을 사용하였다는 조응경(趙應卿)[1469~1491]의 효행담이다. 당시 사간(司諫)이었던 자유(子游)어득강(魚得江)[1470∼1550]은 이 초상화를 찬양하는 글을 지었는데, 조응경의 행위를 한(漢)나라 청란의 효성에 비유하였다.

[채록/수집 상황]

조선 전기에 편찬한 경상도 함안군 읍지인『함주지(咸州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2005년 함안 문화원에서 발간한 『함안의 구전 설화』의 33쪽에 재수록하였다.

[내용]

조응경은 자는 미수(眉叟)이고, 휘는 수만(壽萬)으로 본관은 함안이다. 1469년 3월 3일에 태어나 1491년 7월 22일에 세상을 떠났다. 배우자는 진양 하씨[1465~1490]인데 20여 세에 세상을 떠났다. 조응경은 어릴 때 양친을 잃어 부모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애통히 여겼다. 친척과 노비들에게 널리 물어 부모의 초상을 그려서 봉안하고, 제사 때는 반드시 이 화상(畵像)을 펴서 모시었다. 당시 사간 어득강이 조응경의 요청으로 이 화상을 찬한 글을 지었다. 어득강은 조응경의 행위를 한나라 청란의 효성에 비유하였다.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화상을 그려 봉안하여 제사 때 얼굴을 우러러보며 절하게 되면 쾌하기 그지 없겠고 꿈속에서 부모의 얼굴을 대하기보다 나으리라. 어득강은 옛 선비께서 말하기를 "화상은 털끝만큼이라도 진상이 아니면 안 된다." 했던 것은 위패를 중히 여기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옛 사람은 돌아가면 혹 살던 성의를 볼 수 있는데, 나무 화상[목상(木像)]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극한 정성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 진상이 어버이와 흡사하니 살아서 돌아온 것 같고, 얼굴 모습도 화사하네. 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니, 종신토록 받드리라라고 찬하였다.

[모티프 분석]

「감찰 조응경의 효성」의 주요 모티프는 '일찍이 부모를 여읜 조응경의 효행'이다. 여러 종류의 효행담이 전승되지만 화상, 즉 초상화를 그려 봉안한다는 특이한 소재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찰 조응경의 효성」은 여느 효행담과는 구별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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