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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정의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309
한자 鰒井- 由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 - 「복정의 유래」『함안의 구전 설화』에 수록
관련 지명 복정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담안 마을
성격 설화|전설|효행 이적 전설|우물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이경성|정부인 여주 이씨
모티프 유형 여주 이씨의 효행|이적 우물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담안 마을에서 복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복정의 유래」는 재령 이씨모은(矛隱)이오(李午)의 현손(玄孫)[증손자의 아들] 이경성(李景成) 현감의 정부인(貞夫人) 여주 이씨가 시어머니를 섬기는데, 효행이 남달라 시모가 노환으로 전복을 먹고 싶다고 하자 산골이라 구할 길이 없어 동분서주할 때 하늘이 감복하여 집안 우물에서 기적적으로 전복이 나와서 '복정(鰒井)'으로 이름하였다는 효행 이적(異蹟) 전설이자 우물 유래 전설이다. 본래 복정은 이오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이곳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담안 마을에 들어와 살 때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채록/수집 상황]

2005년 함안 문화원에서 간행한 『함안의 구전 설화』의 78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담안 마을에 있는 우물을 복정이라고 한다. 모은이오 선생은 고려조에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둔적복거(遯跡卜居)하여 집을 짓고 담 안에 우물을 뚫은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이 우물에서 전복이 나왔다고 하여 복정이라 부른다. 여기에 전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고려가 망하자 모은 선생은 여러 현인들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 고려에 대한 충절을 다하였다. 이후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하여 주위에 담을 쌓고 고려 유민이 거주하는 곳이란 의미의 고려동학표비를 세우고, 자급자족을 도모하며 고려동이라 하였다. 모은 선생의 현손인 이경성은 현감이었고, 이후 병조 참판에 증직(贈職)되었다. 남명(南冥)조식(曺植)[1501~1572]이 "어찌하여 더 벼슬을 하지 않는가?"라고 물으니, "노모를 봉양하기 위함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부인인 정부인 여주 이씨도 시모를 지극정성으로 섬겼다. 시모가 노환이 들어 전복을 먹고 싶다고 하였다. 하지만 산골이라 전복을 구할 길이 없어 동분서주하자 하늘이 감동하였던지 집안의 우물에서 전복이 니왔다고 한다. 이 전복으로 죽을 쑤어 시모님께 드렸다. 시모는 며느리에게도 함께 죽을 먹기를 권하였으나 이씨는 먹을 줄을 모른다며 먹지 않았다.

영조 시기의 명재상 유척기(兪拓基)[1691~1767]가 경상 감사로 왔을 때 백일장을 개최했는데, '평생불식복어회(平生不食鰒漁膾)'라는 시제를 내었다는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이 복정은 6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아무리 큰 가뭄에도 샘물이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복정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여주 이씨의 효행', '이적 우물' 등이다. 「복정의 유래」는 외형상으로는 우물 유래담이 우선되어 보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효행 이적담이 주요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 이경성 현감의 정부인 여주 이씨의 정성과 노력에 하늘이 감응해 집안의 우물에서 전복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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