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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농골과 벼락 바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300
한자 進農-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0년 - 「진농골과 벼락 바위」『함안의 지명 유래(증보)』에 수록
관련 지명 입곡동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관련 지명 입곡 저수지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관련 지명 진농골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관련 지명 벼락 바위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성격 설화|전설|지명 전설|암석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마을 사람들|효자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암석 유래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에서 진농골과 벼락 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진농골과 벼락 바위」의 전반부는 제방을 축조하고 수리 시설을 갖추어 가뭄에 대비한 까닭에 농사가 잘 되어 골짜기 명칭을 진농골로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 유래 전설이고, 후반부는 효자가 부모의 산소를 찾아가는 도중에 방해하는 큰 바위를 하늘이 벼락을 내려 두 쪽으로 갈랐다는 벼락 바위에 대한 암석 유래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0년 함안 문화원에서 간행한 『함안의 지명 유래(증보)』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함안군 가야읍에서 입곡 군립 공원, 입곡 저수지를 지나 입곡동으로 가는 길의 왼편에 조그만 제방이 있다. 그 제방 안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 진농골이다. 예전에는 가뭄으로 농사가 잘 되지 않아 흉년이 들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주민들이 자력으로 제방 축조 등 수리 시설을 정비한 후부터 풍년이 들었다. 이때부터 농사가 잘 되는 골짜기라하여 나아갈 진(進)자와 농사 농(農)을 따서 진농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산인면입곡 저수지 동편에 벼락 바위가 있는데, 지금은 전체 모습은 잘 볼 수가 없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시대 어떤 효자가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 살아생전 부친께 효도 못한 것을 후회하며 애통해 하면서 부친 묘소에 초막을 짓고 삼 년간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다. 삼 년 탈상 후에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부친 묘소를 오르내리며 문안을 드렸다. 효자가 오르내리는 산길에 큰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통행에 많은 불편을 주었다. 그러나 효자의 정성은 끊일 날이 없으니 하늘이 효자의 착한 행실에 감복한 나머지 벼락을 때려 바위를 두 쪽으로 갈라놓아 효자의 통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 주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바위 맞은편의 산 모양이 인가에게 해를 주는 구렁이처럼 생겼는데, 그 머리에 어떤 사람이 몰래 묘를 쓰게 되었다. 그 이후로 마을에는 매일같이 크고 작은 액운이 그칠 날이 없어 마을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벼락이 쳐 바위가 두 쪽으로 나뉘어졌다고도 전한다.

[모티프 분석]

「진농골과 벼락 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지명 유래', '암석 유래' 등이다. 진농골이라는 지명 유래와 벼락 바위라는 암석 유래의 두 이야기가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특히 벼락 바위에서는 일부 명당 모티프가 개입되고 있으나 주요 모티프로 작용하지는 않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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