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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139
한자 李石
영어공식명칭 I Seok
이칭/별칭 이순섭(李淳燮)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모로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7년 1월 18일연표보기 - 이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8년~1962년 - 이석 마산 공립 중학교[현 마산 고등학교] 교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55년 - 이석 『현대 문학』 통해 「봉선화」와 「하초」발표
활동 시기/일시 1956년 - 이석 시 「낙엽」으로 등단
활동 시기/일시 1959년 - 이석 첫 시집 『하초』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61년 - 이석 한국 문인 협회 마산 지부 초대 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66년 - 이석 『남대문』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68년 - 이석 한국 문인 협회 마산 지부 회지 간행
활동 시기/일시 1973년 - 이석 『향관의 달』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81년 - 이석 제18회 한국 문학상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84년 - 이석 『눈물의 자유』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92년 - 이석 국민 훈장 모란장 수상
추모 시기/일시 2010년 - 이석 봉선화 시비 건립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모로리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창원시
활동지 경상남도 창원시
활동지 부산광역시
성격 시인
성별
대표 경력 한국 문인 협회 마산 지부 초대 회장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시인.

[활동 사항]

이석(李石)[1927~?]은 1927년 1월 18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모로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이순섭(李淳燮)이다. 진주 사범 학교 심상과를 졸업하고 동국 대학교 전문부를 수학한 뒤에 서울 대학교 사범 대학 중등 교원 양성소를 수료하였다. 1948년부터 1962년까지 마산 공립 중학교[현 마산 고등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이후 부산 여자 전문 대학 문예 창작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목마 시대(木馬時代)』 동인이며, 한국 문인 협회 이사와 『마산 일보』[현 『경남 신문』] 논설 위원을 역임하였다. 1960년 9월 12일에 한국 문인 협회 마산 지부가 발족되었는데, 1961년에 이석이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에 이석이 한국 문인 협회 마산 지부장으로 있을 때, 문학 및 예술 강연회, 시화전, 3·15 기념 회관 개관 축하 문화제, 시 낭송회 등을 해 오다가, 1968년에는 한국 문인 협회 마산 지부의 회지를 간행하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예술 경향 때문에 문학의 발표 기회도 중앙 문단 중심으로 흐르자, 이를 탈피하여 지방 문인의 독자적인 지면을 마련하고자 『문협』 제1집을 출간하였다. 이러한 이석 시인의 노력으로 지방 문단의 오랜 전통을 만들게 되었다.

[저술 및 작품]

1955년 『현대 문학』을 통해 시 「봉선화」·「하초(夏草)」 등이 유치환의 추천으로 발표되었으며, 1956년 박두진에 의해 「낙엽」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첫 시집 『하초(夏草)』[1959]의 출간 이후에 『남대문』[1966], 『향관의 달』[1973], 『화혼집』[1981], 『눈물의 자유』[1984]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이외의 작품으로는 「해바라기」·「향관사(鄕關詞)」[1973], 「노목(老木) 밑」[1973], 「서울」[1972] 등이 있다. 초기에는 서정시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자연을 모티브로 한 서정적 세계의 표출과 심미 의식이 강한 시(詩) 세계를 보여 주었다. 후기에는 역사적인 소재에 대한 시적 관심과 자기 존재에 대한 내적인 탐구를 드러내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1960년 마산에서 일어난 3·15 의거에 대해 쓴 「마산에서의 봄」을 보아도 마산의 의거를 시적으로 기록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상훈과 추모]

1981년에 제18회 한국 문학상, 1992년에 국민 훈장 모란장을 수상하였다. 2010년 경상남도 창원시마산합포구 산호 공원에 있는 시의 거리에 '봉선화 시비'가 건립되었다. 시인 이광석은 "술과 벗들을 좋아해 마음에 드는 지기나 동료들을 위하여 고향 함안의 전답을 팔아 주연을 베풀 정도로 술 인심이 후하였고, 한번 술을 마시면 밤새 통음을 할 만큼 애주가로 호탕한 성격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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