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1138
한자 姜鶴中
영어공식명칭 Gang Hakju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848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0년 4월 28일연표보기 - 강학중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3년 - 강학중 함안 공립 보통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8년 - 강학중 『탐구』 동인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강학중 「등잔불」과 「춘수」 발표
활동 시기/일시 1951년 - 강학중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 함안 지부 결성
활동 시기/일시 1981년 - 강학중 사회 정화 추진 함안면 위원회 위원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83년 - 강학중 함안군 함안면 개발 자문 위원회 부회장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98년 10월 23일연표보기 - 강학중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848
성격 소설가
성별
대표 경력 함안군 함안면 개발 자문 위원회 부회장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소설가.

[활동 사항]

강학중(姜鶴中)[1920~1998]은 1920년 4월 28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848번지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3년 함안 공립 보통학교[21회]를 졸업하였다. 1943년 함안 산업 주식회사 서기, 1946년 함안 금융 조합 서기로 근무하였다. 1941년에 평론가인 조연현, 채낙현 등과 함안군에서 문학을 시작하였으며, 1948년에 조연현, 조진대와 『탐구』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강학중은 문학 동인 활동을 하면서 고향 함안을 지켰으며, 6·25 전쟁 중인 1951년에 전국 문화 단체 총연합회 함안 지부를 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55년 이후에는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의 활동은 대부분 지역의 현안에 관계하는 일과 선도 활동이었다. 1981년에는 사회 정화 추진 함안면 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그 이후 법무부 갱생 보호회 부산 지부 함안 지구 위원이 되었고, 마산 지방 검찰청 상임 소년 선도 위원이 되었다. 1983년 함안군 함안면 개발 자문 위원회 부회장을 맡는 등 지역의 일에 발 벗고 나서 일하였다. 1998년 10월 23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 975번지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강학중의 첫 작품은 1949년에 발표한 「등잔불」[『문예』 10월호]과 「춘수(春愁)」[『령문』 제8집]이다. 두 작품에서는 공통적으로 아버지의 부재가 보이며, 문장이 지나치게 길다. 긴 문장은 소설적 효과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세련된 문장을 구사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등잔불」에서 농촌의 붕괴, 소시민의 위신과 체면 붕괴, 곳곳에 배어나는 한탄은 아버지의 부재, 삯바느질 하는 어머니의 고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건강한 동생이 집안을 이어갈 것이라는 안도감을 보여 주기에 절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춘수」에서도 항일 운동으로 지하 공작 활동을 하다 죽은 아들의 무덤을 찾는 노인이 등장한다. 그는 손주에게 ‘무덤은 허물어졌으나 영혼은 남아’ 있는 뜻을 알림으로써 제 역사 찾기의 희망을 보여 주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한 단편 「그늘」에서는 어머니의 부재를 보인다. 1955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인 「밀어(密語)」에서도 아내가 먼저 죽으면서 조용하게 밀어(密語)를 남긴다. 해방된 나라에 두 갈래 싸움이 피비린내를 뿌리니, 죽음을 앞둔 아내는 남편과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며, 고향에 돌아가 살길 부탁한다. 죽으면서도 남은 가족이 돌아가 기댈 곳이 있음에 대한 안도감을 주는 것은 고향이다.

강학중이 발표한 작품은 몇 편 되지 않지만 그의 소설에서는 전체적으로 가족을 중심에 두고 서사를 전개하는데, 모두 가족 구성원의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 가난, 농촌의 붕괴, 8·15 광복 직후의 혼란 등으로 힘든 서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 핍진성을 더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가족이 서로 기대고 마음을 다해 나누는 정이 있고, 고향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작가가 마지막까지 고향을 지키며 갱생 보호와 소년 선도의 일을 하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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