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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751
한자 趙昺奎
영어공식명칭 Jo Byeonggyu
이칭/별칭 응장(應章),일산(一山)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동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6년 2월 4일연표보기 - 조병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76년 - 조병규 생원시 합격
몰년 시기/일시 1931년 5월 27일연표보기 - 조병규 사망
출생지 함안군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성격 학자
성별
본관 함안

[정의]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응장(應章), 호는 일산(一山). 고조할아버지는 조증윤(趙增玧)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조진욱(趙鎭旭)이며, 할아버지는 조득호(趙得浩)이다. 아버지는 여음(廬陰)조성각(趙性覺)이고, 어머니는 이남주(李南柱)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부인은 심이학(沈履鶴)의 딸 청송 심씨(靑松沈氏)이다.

[활동 사항]

조병규(趙昺奎)[1846~1931]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에서 태어났다. 1876년(고종 13)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박치복(朴致馥)·김진호(金鎭祜)·노상직(盧相稷) 등과 함께 이택당(麗澤堂)에서 『성재집(性齋集)』을 간행하였다. 51세 때 덕산(德山)에 들어가 『남명집(南冥集)』을 교정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시를 지어 비분강개한 마음을 드러내었다. 이후로 인사를 사절하고 마을 뒤 일산정(一山亭)에서 20여 년 동안 고도(古道)를 밝히고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학문과 저술]

어계(漁溪) 조려(趙旅), 무진(無盡)조삼(趙參)의 후예로 성호학의 현실주의 정신을 전해 받았다. 그는 존양 성찰(存養省察)을 통한 심성 수양을 학문의 기본으로 삼고, 스승 성재(性齋)허전(許傳)[1797~1886]의 영향으로 예학에 진력하였다. 나라를 빼앗기고 유교의 도가 무너져 가는 시대를 살면서 지주석처럼 굳건한 의지로 도를 부지하려 하였다. 저서로 『일산집(一山集)』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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