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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계 실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580
한자 北溪 實紀
영어공식명칭 Bukgyesilgi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경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북계 실기』 간행
간행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북계 실기』 국역판 간행
소장처 조문규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1길 156-5[모곡리 883-3]
성격 문집
저자 조수천
편자 조영규
권책 2권 1책
행자 9행 18자
규격 20.8×30.7㎝
어미 상하 내향 화문 어미(上下內向花紋魚尾)
권수제 북계 실기(北溪實記)
판심제 북계 실기(北溪實記)

[정의]

1934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문신 조수천의 문집.

[저자]

조수천(趙壽千)[1482~1553]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중수(仲叟), 호는 북계(北溪)이다. 함안군 군북면 원북동에서 태어났다. 어계(漁溪)조려(趙旅)의 손자로 아버지는 좌윤(左尹) 조금호(趙金虎)이고, 어머니는 유숙(柳塾)의 딸인 진주 유씨(晉州柳氏)이다. 초취 부인은 이세분(李世芬)의 딸인 전의 이씨(全義李氏)이고, 후취 부인은 민희전(閔希銓)의 딸인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1503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1506년 선전관(宣傳官)에 종사하면서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함흥 부사(咸興府使)에 제수되었다. 1511년 남해 현령(南海縣令)으로 재직 중에 어떤 사람에게 초피(貂皮)·흑단자(黑段子)를 받고 군관으로 삼아 성희안의 추고를 받았다. 1524년 충청도 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에 임명되었다. 1537년에는 함경남도 절도사(咸鏡南道節度使)에 임용되었다. 1539년 영흥 부사(永興府使)로 있을 때 첩의 아들을 적처의 아들인 것처럼 속여 사족의 가문과 혼사를 정하였다고 하여 파직되었다. 1545년 경상 우수군 절도사(慶尙右水軍節度使)를 맡고 있었는데,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북계 가에 삼수정(三樹亭)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묘소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북계 실기(北溪實記)』는 조영규(趙映奎)와 조성탄(趙性坦) 등의 주도로 원고를 수집하고 김영한(金寗漢)에게 서문을 받았으며, 조강식(趙綱植), 조성무(趙性武), 조용하(趙鏞廈) 등의 교정과 감역을 거쳐 1934년에 간행하였다. 그 뒤 조양제(趙亮濟)의 번역과 이재호(李載浩)의 교열을 거쳐, 국역된 『북계 실기』가 2005년에 간행되었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 내향 화문 어미(上下內向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0.8㎝, 세로 30.7㎝이다. 1면 9행에 1행의 자수는 18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북계 실기(北溪實記)'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김영한(金寗漢)의 서문을 시작으로, 권1에는 시(詩) 2수, 동료에게 보내는 편지 1편, 문(文) 2편, 유훈(遺訓)이 실려 있다. 권2 부록에는 중종반정 원종공신의 녹권과 이에 대한 후손 조영규의 후지(後誌)가 실려 있고, 이어 조수천의 행적을 기록한 「기년(紀年)」, 중종반정에 가담한 주요 인물을 기록한 「훈련원 연맹록(訓練院聯盟錄)」과 반정 당시 격문이 수록되어 있다. 또 「종유록(從遊錄)」에 평소 종유한 인물을 기록하였고, 후손 조찰(趙札)이 기록한 「행록략(行錄略)」, 8세손 조중철(趙重澈)이 기술한 「유사략(遺事略)」, 11세손 조달식(趙達植)이 쓴 행장(行狀), 『함주지(咸州誌)』에 실린 조수천의 기사, 성정진(成鼎鎭)이 쓴 묘갈명(墓碣銘), 이준구(李準九)의 「삼수정 유허비명(三樹亭遺墟碑銘)」, 이도복(李道復)이 지은 전(傳), 조호련(趙浩鍊)의 「모선록(慕先錄)」, 암행어사와 경상도 감사에게 시호를 요청하는 글 2편, 묘비를 세우고 낙성할 때 지은 제현의 시 6편이 실려 있고, 책끝에는 조영규와 조성탄의 발문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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