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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528
한자 廣川集
영어공식명칭 Gwangcheonjip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23년연표보기 - 『광천집』 간행
성격 시문집
저자 조성윤
간행자 조태규
권책 3권 2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0.8×30.5㎝|15.8×20.8㎝[반곽]
어미 상하 이엽 화문 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
권수제 광천집(廣川集)
판심제 광천집(廣川集)

[정의]

1923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학자 조성윤의 시문집.

[저자]

조성윤(趙性胤)[1845~1904]은 조선 말기 함안과 의령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이다. 과거 시험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 탐구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편찬/간행 경위]

『광천집(廣川集)』은 1923년 조성윤이 죽은 지 20년 되는 해에 차남인 조태규(趙台奎)가 부친의 유문이 유실될까 염려하여 남겨진 시문을 모으고 관련 글들을 부록해서 간행하였다. 첫부분에 장석영(張錫英)의 서문(序文)과 목록이 있다. 발문(跋文)에는 안유상(安有商), 조성혁(趙性赫), 이병주(李秉株)이 지은 3편의 글이 있다.

[형태/서지]

3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판식은 사주 단변(四周單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 이엽 화문 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0.8㎝, 세로 30.5㎝이며, 반곽의 크기는 가로 15.8㎝, 세로 20.8㎝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광천집(廣川集)'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는 시(詩)와 만시(挽詩)가 수록되어 있다. 남명(南冥)조식(曺植)의 유적지인 산천재(山天齋)를 탐방하여 3편의 시를 남겼는데, 경의(敬義) 사상, 지리산과 같은 우뚝한 기상, 경의도(敬義刀)에 새겨진 글귀 등을 서술하고 있다. 이 시들을 통해, 조성윤은 조식을 존모하는 마음이 남달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권2에는 편지(便紙), 서문, 기문(記文), 명(銘), 잠(箴), 찬(贊), 잡저(雜著), 유사(遺事), 제문(祭文) 등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명(銘)의 부분에 실려 있는 「좌우명(座右銘)」에서는 조성윤이 추구한 실천 덕목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공경함이 게으름을 이겨내어라. 생각할 적에 사특함이 없어야 한다. 게으른 모습을 멀리 하며, 난폭하고 성내는 짓을 금지하라. 이것들을 소홀히 하고 살피지 않는다면, 올바른 법도를 벗어날 것이다. 항상 여기에 눈을 두기 위해 한쪽 모퉁이에 걸어 두노라."라고 했다.

잡저에 있는 「오초 신거설(吾樵新居說)」에는 조성윤이 함안에서 의령 지산리(芝山里) 오초동(吾樵洞)으로 이주한 까닭에 대해 밝혀놓았다. 조성윤이 본래 거주하던 곳은 땔나무를 하기 힘들어 언제나 춥게 생활하였다. 그런데 마흔이 넘자 몸이 쇠하여 추운 방에서 생활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땔나무를 편리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인 오초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오초동의 원래 이름은 오척동(吾尺洞)인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마을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든 땔나무를 할 수 있으므로, '나도 땔나무를 할 수 있다'는 의미를 취해 '오초동(吾樵洞)'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류정기(柳亭記)」, 「하허대기(何許臺記)」, 「겸가당기(蒹葭堂記)」 등을 통해서도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 적에 그 이유와 의미를 설명해 놓았다. 권3은 부록으로, 조성윤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輓詩)와 제문, 그의 삶을 기록한 가장(家狀), 행장(行狀), 행록(行錄), 묘지명(墓誌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광천집』은 개항기 함안과 의령을 중심으로 활동한 조성윤의 시문과 행적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광천집』을 통해 그가 성취한 문학과 학문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함안 지역의 시대상과 생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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