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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527
한자 廣棲 遺集
영어공식명칭 Gwangseoyujip
이칭/별칭 『광서집(廣棲集)』,『광서 이공 유집(廣棲李公遺集)』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병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932년연표보기 - 『광서 유집』 편찬
간행 시기/일시 1935년 8월 25일연표보기 - 『광서 유집』 광천재 간행
간행처 광천재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면 광정리
성격 시문집
저자 이유성
편자 이광흠
간행자 이병일
권책 3권 1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20.2×30.3㎝|15.8×19.6㎝[반곽]
어미 상하 이엽 화문 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
권수제 광서 이공 유집(廣棲李公遺集)
판심제 광서집(廣棲集)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이유성의 시문집.

[저자]

이유성(李有星)[1808~1864]의 초명은 덕성(德星)이니, 부친이 태몽으로 추성(樞星)을 보았기 때문이다. 후에 유성(有星)으로 바꾸었다. 자는 남수(南叟)이며,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흘봉(屹峰)이빈망(李贇望)으로, 밀암(密庵)이재(李栽)의 문인이다. 아버지는 이윤형(李允馨)이다. 어머니는 조태의(趙泰毅)의 딸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며, 임진왜란 때 순국한 대소헌(大笑軒)조종도(趙宗道)의 후손이다. 부인은 배이주(裵以周)의 딸인 분성 배씨(盆城裵氏)와 안석(安氵+奭)의 딸인 순흥 안씨(順興安氏)이다. 자녀로 1남 4녀를 두었는데, 아들 이수호(李壽浩)는 성재(性齋)허전(許傳)의 문인이다. 사위는 조정수(趙珽秀), 안인열(安仁烈), 조성욱(趙性郁), 이희록(李熙祿) 등이다.

이유성은 1808년 4월 17일 함안군 광정리(廣井里)에서 출생하였다. 이유성이 광서(廣棲)로 자신의 호를 삼은 까닭은 광정리라는 지명과 자신의 학덕을 넓혀 나가겠다는 지향을 함께 담은 것이다. 3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형수에게 양육되었으며, 7세 때 형 경재(警齋)이유하(李有夏)에게 수학하였다. 어릴 적에 또래들과 함께 한강(寒岡)정구(鄭逑)를 주향하고 황곡(篁谷)이칭(李偁)과 황암(篁嵒)박제인(朴齊仁)을 배향한 도림 서원(道林書院)에서 놀았는데, 이유성이 사당에 들어가 절을 올린 후 함을 열어보고 다시 닫은 후 "내가 도림 서원에 갔더니, 나무 앞면에 모두 선생들이시네."라고 시를 지었다. 이 일을 아버지에게 아뢰자, 함부로 위패를 열어보았다고 나무랐지만 마음속으로는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23세에 낙육재(樂育齋)에 선발되었다.

52세 때 향시에 합격했지만, 회시에는 떨어졌다. 이후로는 자신의 학문을 반성하고 마음을 새롭게 일으켜 과거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을 올바르게 세워나가는 공부에 매진하였다. 조카 이수필(李壽弼)이 이유성을 위해 시록천(柴鹿川) 가에 서재를 지어주어 녹천재(鹿川齋)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유성에게 수학한 학자로는 사위 조정수, 종손(從孫) 이현팔(李鉉八), 향인(鄕人) 황기하(黃基夏), 조우식(趙祐植), 이용현(李龍鉉) 등이 있다. 1863년 봄에 쌍봉(雙峰)이상두(李尙斗), 도재(道齋)문욱순(文郁純), 금계(琴溪)조우식 등과 함께 도림 서원에 보인계(輔仁契)를 결성하여 정구의 학덕을 기리고 학문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864년 4월 13일 죽었다. 향년 57세였으며, 광려산 아래에 안장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광서 유집(廣棲遺集)』은 1932년 이유성의 손자 이광흠(李光欽)이 시문 및 관련 자료를 수습하여 편찬하였으며, 1935년 6월 25일에 인쇄 허가를 받아 8월 17일에 인쇄하고, 8월 25일에 간행하였다. 서문(序文)은 소눌(小訥)노상직(盧相稷)이 지었으며, 발문(跋文)은 조영규(趙映奎)와 종증손 이정호(李正浩)가 작성하였다. 『광서집(廣棲集)』, 『광서 이공 유집(廣棲李公遺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3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계선(界線)이 있으며, 상하 이엽 화문 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가로 20.2㎝, 세로 30.3㎝, 반곽(半郭)의 크기는 가로 15.8㎝, 세로 19.6㎝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권수제는 '광서 이공 유집(廣棲李公遺集)', 판심제는 '광서집(廣棲集)'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는 시(詩) 55편이 실려 있다. 7세 때 도림 서원에 가서 위패를 열어본 후 지은 시가 첫머리에 있으며, 임종할 때 구두로 지은 시가 끝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두 편 모두 완성된 시는 아니다. 하지만 7세 때 지은 시구를 통해 선현을 존모하는 이유성의 마음을 볼 수 있으며, 임종할 때 입으로 전한 시구에는 죽음에 임하여서도 모친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효성을 느낄 수 있다. 권2에는 편지(便紙) 4통, 잡저(雜著) 2편, 서문 1편, 기문(記文) 1편, 상량문(上樑文) 3편, 축문(祝文) 1편, 애사(哀詞) 1편, 제문(祭文) 8편이 수록되어 있다. 편지는 정원길(鄭元吉), 안상준(安相俊), 족인 이상천(李尙天), 사위 안인열(安仁烈)에게 보낸 것이다. 보인회서(輔仁會序)는 보인계를 결성한 일에 관해 서술한 서문이며, 「광서기(廣棲記)」는 광서라는 호를 지은 뜻을 나타낸 기문이다. 잡저에는 「식취우정 신뢰(識聚友亭迅雷)」와 「자손 조성로 자설(姉孫趙性魯字說)」이 실려 있다. 권3은 부록으로 이유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와 제문(祭文) 및 삶의 행적을 서술한 가장(家狀),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등이 첨부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광서 유집』을 통해 조선 후기 함안에서 활동한 이유성의 학문과 삶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자료에 근거하여 당시 함안 지역의 시대 상황 및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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