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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함안 지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329
한자 新幹會 咸安 支會
영어공식명칭 Haman Branch of the Singanho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7년 10월 16일연표보기 - 신간회 함안 지회 결성
해체 시기/일시 1931년 5월 16일연표보기 - 신간회 함안 지회 해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9년 8월 - 산간회 함안 지회 임원 개선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0년 12월 - 신간회 함안 지회 제4회 총회 개최
최초 설립지 신간회 함안 지회 - 경상남도 함안군
성격 사회 운동 단체
설립자 조한휘[회장]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있었던 신간회 소속 지회.

[개설]

중국의 항일 전선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에 영향을 받아 1927년 2월 15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통일 전선 단체인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신간회는 1927년부터 1931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130여 개의 지회를 갖춘 회원 4만 명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설립 목적]

신간회 함안 지회는 신간회 본부의 활동 방향에 따라 계몽 운동, 생활 생존권 수호 운동, 사회 문제와 정치 문제의 해결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신간회 함안 지회는 1927년 10월 16일에 함안 청년 회관에서 결성되었다. 이후 1929년 8월 임원을 개선하고 신간회 도 지회 연합회 촉진의 일, 본부 회관 건축 조력의 일, 회보 발행 등에 관해서 논의했다. 새롭게 개편된 임원들은 서기장 조진규, 회계 신덕조, 서무부장 조찬규, 부원 손문욱, 재정부장 변덕조·박성출, 조직 선전부장 안봉중, 부원 조두흠, 교육 출판부장 안정·강대시, 조사부장 조동만, 부원 이동수, 전속 상무 조진규 등이었다.

신간회 함안 지회는 1930년 12월 제4회 총회를 함안 청년 동맹 군북 지부에서 개최하고 위원을 재차 선임했다. 신간회 함안 지회는 1925년 이후 새롭게 창립된 함안 청년회와 1927년 11월에 창립된 함안 청년 동맹에서 활동한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간회 함안 지회의 회원 다수는 함안 소작인 조합함안 농민 조합에서 함께 활동했다. 신간회 함안 지회는 1931년에 신간회 중앙에서 시작된 해소(解消) 논의에 부딪혀 찬반 논의 결과 해소 준비로 결정이 되었다. 이후 함안 지역의 사회 운동을 이끌어 가는 것은 함안 농민 조합이 맡게 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간회 지회 조직의 활동은 크게 계몽 운동, 생활과 생존권 수호 운동, 반봉건 운동과 같은 사회 문제와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 각종 억압 법률의 철폐, 단결권, 파업권과 같은 정치 문제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계몽 운동은 주로 웅변, 연설회, 야학의 운영, 미신 타파, 문맹 퇴치, 흑의 착용, 조혼 금지, 매춘과 풍기 등의 문제를 다루었다. 또한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호세 인하, 수리 조합 설치 반대 등을 주장했다. 지역에서 신간회 지회의 전 민족적 정치 투쟁 확보는 청년, 노동, 여성, 학생, 소년, 형평 운동을 얼마나 조직적으로 잘 운영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었다. 특히 이들 부문 운동 가운데 신간회 지회 활동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함안 청년 동맹이었다.

[의의와 평가]

신간회 운동은 좌익 계열과 비타협적 우익 계열이 함께 투쟁한 대표적인 항일 운동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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