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967
한자 堤防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칠서면|대산면|법수면|군북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석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0년 - 안기제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에 축조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1년 - 함안제 1차 공사 완료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8년 - 악양 제방과 양포 제방에 둑 꽃길 조성
광려천 제방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칠서 안기 제방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
악양 제방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월촌 제방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하기 제방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하기리
장지 제방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
장지 제방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강이나 하천 둘레에 흙이나 돌, 콘크리트 따위로 쌓은 둑.

[개설]

함안 지역은 남쪽에는 여항산(艅航山), 서쪽에는 방어산(防禦山), 동쪽에는 청룡산이 솟아 있어 함안천(咸安川), 서천, 남강(南江)이 정북 방향으로 흐르다가 낙동강(洛東江)과 합류하여 북동쪽으로 흘러간다. 이로 말미암아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 물이 역류하는 특이한 지세이다. 한국의 대부분 지역이 그렇듯 고산준령(高山峻嶺)보다 민둥산이 많아 하천이 굽이굽이 완만히 흘러 홍수 때면 피해가 많았다. 함안 지역은 지형적인 영향으로 그 피해가 더욱 심하였다. 함안 지역에서는 이런 자연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아라가야(阿羅伽倻) 시대부터 제방의 축조가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특이한 것은 함안군 칠원읍의 구성제(龜城堤)가 왜구 침입에 대비한 성으로서 제방이라는 구전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비변사등록(備邊司勝錄)』에는 수리 시설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영조(英祖), 정조(正祖) 시기의 낙동강, 남강의 치수 사업 내용도 보인다.

[변천]

함안 지역 제방의 실제 축조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안기제(安基堤)부터이다. 안기제는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에 있으며 조선 말기인 1900년(고종 37)경에 왕명으로 축조되었다. 그 후로 일제 강점기에 26개[62㎞]를 축조하여 35.04㎢의 유혜 면적이 늘어났으며, 광복 이후에는 대대적인 제방 축조가 시행되어 51개소[146㎞] 28.98㎢의 유혜 면적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는 함안 지역 전체 논 면적의 80%가 제방으로 인해 생성되었다.

제방 축조의 방법은 일제 강점기에 축조된 작은 제방의 경우는 인력으로 축조하였다. 하지만 함안제 등 큰 제방은 인력 및 갱도차를 설치하여 원거리에서 흙을 운반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주로 장비[불도저 등]를 동원해 축조하였다. 제방의 축조 시 노임 지불은 일제 강점기 때는 한 평을 기준하여 능력에 따라 현금 50~70전을 지급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현금 및 밀가루 등 현물을 지급하여 축조하였으며, 하루 동원 인원은 200~300명 정도로 품삯을 벌기 위해 자진 참여하였다.

제방은 대부분 정부에서 설치하였고 작은 제방의 경우는 농경지 보호를 목적으로 개인이 주로 시공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축조된 주요 제방은 함안제로 함안 수리 조합을 설치하여 1920~1921년에 1차 공사를 완료하였고, 그 이후 계속 보강 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현대에는 제방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여 지난 2008년부터 남강 변에 있는 악양 제방과 양포 제방에 둑 꽃길을 조성해 휴식 공간을 마련하였다. 또한 함안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긴 제방이 있는 지역답게 유일한 둑방 마라 투어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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