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383
한자 朴震英遺品
영어공식명칭 Bak Jinyeoung Mement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 8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재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5월 2일연표보기 - 박진영 유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박진영 유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장처 국립 진주 박물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원소재지 불천묘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 88
성격 유물
소유자 밀양 박씨 영동정공파(令同正公派)
관리자 국립 진주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에 있는 박진영 장군의 불천묘 및 유품.

[개설]

박진영(朴震英)[1569~1641]은 조선 인조(仁祖) 때의 장군으로 자(字)는 실재(實哉), 호(號)는 광서(匡西)이다. 아버지는 박오(朴旿)이다. 어려서부터 재주와 식견이 남달랐고 기개 또한 대단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수 유숭인(柳崇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무찔렀다. 1599년(선조 32)에 용궁 현감(龍宮縣監)에 임명되었고 1613년(광해군 5)에는 경흥 도호부사(慶興都護府使)에 제수(除授)되었다. 이때 박진영은 포로로 잡혀가 있는 우리 동포를 많이 귀환시켰으며 이 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이 되었다.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의 막하에 종군하여 동교(東郊)에서 대승하였다. 이어 평산 도호부사 겸 해서 방어사(平山都護府使兼海西防禦使)가 되었으나 곧 귀향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후 굴욕적으로 항복한 것을 비분강개하다가 1641년(인조 19)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내인리 불천묘에는 박진영의 유품과 고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관리 등의 이유로 유품과 고문서 등은 국립 진주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소유자는 밀양 박씨 영동정공파(令同正公派)이다.

[형태]

내인리 불천묘(不遷廟)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건물로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이곳은 박진영 장군의 유품을 보관하던 유물관으로 사용되었다. 박진영 유품은 박진영이 평소 사용하던 물건들과 명나라 제독으로부터 받은 장려패문(奬勵牌文)[사기 진작을 위해 박진영 장군에게 내린 글]과 고문서 등 231점이다. 고문서는 교지·분재기·토지 문서·노비 문서·호구 단자·송사 문서·입안 문서·간찰 등이다. 그중 교지는 1871년(고종 8) 박진영에게 '무숙(武肅)'이라는 시호를 내린 것으로, 내용은 "쳐들어오는 적의 창을 꺾어 치욕을 막는 것을 '무'라 하고 부하들을 잘 다스려서 군기를 바르게 하는 것을 '숙'이라 한다"이다.

[의의와 평가]

불천묘는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으로 평가되는 장군 박진영의 공적과 정신을 보존, 홍보하여 지역민의 애국 의식을 고양하며 호국 정신 선양 전반에 기여하였다. 유품 중 각종 고문서들은 조선 후기의 사회 경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박진영 유품(朴震英遺品)은 1979년 5월 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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