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운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155
한자 迎運里
영어공식명칭 Yeongu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영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함안군 죽남면 영운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3년 - 함안군 죽남면 영운리에서 함안군 군북면 영운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가구수 73가구
인구[남/여] 130명[남 58명/여 72명]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영운리(迎運里)의 영운동(迎運洞)은 조선 시대까지 건천동(乾川洞)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건천(乾川)이란 이 마을 산골짜기에서 나는 물이 아주 귀하다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에 영운동으로 바뀌었다. 영운리의 지곡동(知谷洞)은 지실[지곡(知谷)]이라고도 부르며 조선선조(宣祖) 때 함안 군수로 재직하던 한강(寒岡)정구(鄭逑)가 이곳 출신인 도암(道岩)이희성(李喜誠)과의 교우가 좋아 그의 학식을 높이 평가하여 지(知) 자를 써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에 함안군 죽남면 영운리로 개설되었다가 1933년 함안군 군북면 영운리로 개편되었다. 영운동은 여양 진씨(驪陽陳氏)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에 이웃 마을 우계동(愚溪洞)에서 살다가 영운동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도암이희성이 지곡동 어귀에 여섯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 그 아래에 자연석으로 단(壇)을 만들어 이를 육송단(六松壇)이라 하였고 후손들이 1921년에 사정(舍亭)을 지어 육송정(六松亭)이라 하였다. 1955년에는 육송단비를 세웠으며 육송(六松) 중 세 그루가 죽어 다시 심었다.

[자연환경]

방어산(防禦山)[532.1m]의 동쪽 비탈면에 위치하고, 대부분이 산지이며 북쪽으로 흐르는 영운천 주변으로 범람에 의한 평지가 발달하고 있다. 방어산에서 발원한 여러 지류들이 영운천을 이루며 북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흐르는 남강(南江)과 합류한다. 지곡과 영운 마을은 방어산 동쪽 비탈면의 계곡 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다. 지곡 마을의 경우 계곡이 깊고 물이 좋았다고 하며 마을 위쪽에 용화사(龍華寺)라는 절이 있다.

[현황]

2014년 12월 말 현재, 총 73가구에 130명[남 58명/여 7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지곡동과 영운동이다. 영운천 주변에 발달한 범람원을 개간하여 농경지로 이용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여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곡동이 영운동보다 인구 규모가 크고, 계곡이 깊어 물이 좋았다고 하며 마을의 서쪽 상류 지곡 소류지 위쪽에 용화사가 있다.

[참고문헌]
  • 『함안 군지』(함안 군지 편찬 위원회, 1997)
  • 『2013~2014 군정 백서』(함안군, 2015)
  • 함안 군청(http://www.haman.go.kr)
  • 함안군 군북면(http://www.haman.go.kr/town/Gunbuk)
  • 함안군 통계 연보(http://stat.ham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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