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군 지도」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103
한자 咸安郡 地圖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홍성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72년연표보기 - 「함안군 지도」가 속한 『경상도 지도』 제작
현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관찬 지도
서체/기법 채색
소유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관리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정의]

1872년 제작된 『경상도 지도』에 수록된 옛 함안군의 관찬 지도.

[개설]

조선 후기의 함안군(咸安郡)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가야읍, 여항면, 군북면, 법수면, 대산면, 산인면 일대로 읍치는 함안면 봉성리이다. 함안 지역은 가야 제국 중에서 아라가야가 있었던 속으로 560년쯤 신라에게 멸망하여 편입되었다. 「함안군 지도(咸安郡地圖)」는 현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경상도 지도(慶尙道地圖)』에 수록된 「함안군 지도」는 전국 다른 군현과는 달리 남쪽을 위쪽으로 배치하여 그려져 있다. 북쪽은 남강에 접하여 평야가 발달하여 있고, 남쪽은 여항산과 광려산 등의 산으로 고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고을의 진산인 여항산과 읍치의 좌향을 고려하여 지도의 구도를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치에는 관청 건물은 없고, 척화비(斥和碑)만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주변 지역에는 각 면과 소속 마을들을 적어 두었다. 현재의 가야읍에 속하는 산외면에는 대평이 표시되어 있는데 지금의 가야벌이다. 이곳이 아라가야 시기의 중심지였으며, 조선 시대에도 관내에서 토지가 가장 비옥한 곳으로 사대부가 많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주변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홍선으로 그렸는데 대로와 소로를 굵기를 달리하여 나타내었다. 장시는 읍시(邑市)와 내대산면(內大山面)의 평림시(平林市), 안도면(安道面)의 군북시(郡北市) 등이 도로변을 따라 발달하였다. 읍치 북쪽에는 집의(執義) 조삼(趙參)이 세운 무진정(無盡亭)이 있고, 북쪽에는 합강정(合江亭)악양루(岳陽樓)와 향교 옆 장재두(張齋斗)가 창건한 양사재(養士齋)가 표시되어 있다.

[특징]

「함안군 지도」는 전국의 다른 군현과 달리 남쪽을 위쪽으로 배치하여 그린 것이 특징이다. 남쪽으로 여항산, 광려산 등이 고지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을의 진산인 여항산과 읍치의 좌향을 고려하여 지도의 구도를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문자로 기록된 지지와 달리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어, 함안군 지역의 지세와 중요 건물 및 기관의 위치와 거리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19세기 함안군 지역의 지세와 중요 건물 및 기관의 위치와 거리 등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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