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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과부의 예지력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과부 덕에 급제한 사내」는 도화살(桃花煞)이 끼어 크게 해를 당할 선비의 운수를 알아챈 과부가 미리 곤혹을 당하게 만들어서 액땜을 했기 때문에 선비가 급제할 수 있었다는 과부의 예지담이다. 1989년 부산 대학교에서 발행한 『한국 문화 연구』Ⅱ에 실려 있다. 정확한 채록 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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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술을 권하며 부르는 유희요. 「권주가(勸酒歌)」는 술을 대작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서 조선 후기에 성행한 잡가(雜歌)의 하나이다. 주로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고 만수무강과 만사형통을 기원하기도 한다. 함안「권주가」는 사위가 딸을 키워 준 장모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장모가 사위에게 딸을 부탁하며 술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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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동지산에서 유익한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대적 유익한(大賊有益限)」은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는 영웅 전설이자 의적 전설이다. 2005년 함안 문화원에서 간행한 『함안의 구전 설화』의 243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89년 7월 16일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강명리에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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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판소리 「춘향가」 중의 한 대목을 가져와 만든 비기능요. 「자탄가(自嘆歌)」는 이 도령이 부친을 따라 한양으로 떠난 후 독수공방하며 세월을 보내는 춘향의 내면을 그린 비기능요이다. 사랑하는 임을 따라 한양으로 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임에 대한 원망, 살아서는 임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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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칭의 문집. 이칭(李偁)[1535~1600]의 본관은 광평(廣平)이며, 자는 여선(汝宣), 호는 황곡(篁谷)·관화간죽옹(灌花看竹翁)이다. 부인은 박윤수(朴允秀)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동지산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숙부 임훈(林薰)과 임운(林芸)에게 배웠고, 뒤에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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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대순(姜大珣)[1892~1944]은 아들 강기중(姜基中), 딸 강복기(姜福基)가 있다. 손자는 강호영(姜鎬英), 강호태(姜鎬台), 강호준(姜鎬畯)이 있고 3명의 손녀를 두었다. 강대기(姜大璣)가 셋째 아우이며, 독립운동가 강대한(姜大漢)과 강대익(姜大益)이 집안의 형이다. 강대순은 1892년 1월 16일 함안군 함안면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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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대한(姜大漢)[1886~1948]은 1886년 10월 2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강현중(姜賢中)·강경중(姜璟中)이 있고, 손자는 강호섭(姜鎬燮)·강호진(姜鎬珍)이 있다. 1919년 3·1 운동이 발생하자 함안에서도 거사하기로 하여 태극기와 선언문을 준비하였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과 독립 선언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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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에 있는 법정리. 강명리(康命里)는 강지리와 장명리가 병합되면서, 한 글자씩을 따서 붙인 지명이다. 강명리가 속한 땅은 육 가야(六伽倻) 중 아라가야(阿羅伽倻)에 속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함안군(咸安郡)으로 개칭되었고, 995년(성종 14) 함주(咸州)가 되었다. 강명리는 본래 상리에 속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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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는 약 1억 년을 전후하여 형성된 중생대 백악기 후기 퇴적층인 경상누층군 함안층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및 새 발자국 화석이 확인된다. 이는 백악기 당시 한반도 남부에 대규모 호수가 조성되었던 지형적 조건과 초식 공룡의 먹이 식물이 풍부하게 자랐던 환경적 조건이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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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소설가. 강학중(姜鶴中)[1920~1998]은 1920년 4월 28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848번지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3년 함안 공립 보통학교[21회]를 졸업하였다. 1943년 함안 산업 주식회사 서기, 1946년 함안 금융 조합 서기로 근무하였다. 1941년에 평론가인 조연현, 채낙현 등과 함안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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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었던 사립 특성화 고등학교. 교육 목표는 '보건 간호·대안 교육을 통한 유능한 인재 육성, 21세기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부응하고 학교와 지역 사회에 요구되는 소질과 적성 계발 추구,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세계 속의 으뜸 연꽃인으로 거듭난 인재 육성, 자비와 인내를 통한 열린 교육을 통해 다양한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 확대'이다.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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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과 가야읍을 흐르는 하천. 광정천(廣井川)이라는 명칭은 하천 중류의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광정리는 마을에 넓은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함안군 남쪽에 위치한 여항산[770m]의 산자락 깊숙한 미산령에서 발원하여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의 함안 파수 농공 단지를 굽이돌아 광정리의 평지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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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에 있는 법정리. 괴산리(槐山里)는 북외리와 괴항리가 병합되며 붙여진 이름이다. 괴산리가 속한 땅은 육 가야(六伽倻) 중 아라가야(阿羅伽倻)에 속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함안군(咸安郡)으로 개칭되었고, 995년(성종 14) 함주(咸州)가 되었다. 괴산리는 본래 하리(下里)에 속하였는데, 이후 동지산(冬只山)과 성산(城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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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괴산리 고인돌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새터 마을 북쪽 농경지에 있으며, 함안 대로에 접해 있다. 함안군 지역의 고인돌은 남강과 낙동강에 유입되는 함안면의 함안천, 칠원읍의 광려천, 군북면의 석교천을 따라 대부분 분포한다. 괴산리 고인돌은 함안천 주변에 있으며, 함안천을 따라서는 괴산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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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천주교 마산 교구 함안 성당 소속 공소. 구읍 공소는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지역에 원활한 선교 활동과 신앙생활을 위해 설립되었다. 1952년 최마리아 부부가 움막 한 채를 봉헌하면서 공소가 시작되었다. 그 후 천주교회는 구호물자가 나와 신자 수가 증가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전 기금을 마련하면서 현재 공소 자리를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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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구재옥(具載玉)[1890~1953]은 1890년 11월 1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에서 태어났다. 구재옥이 참여한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국장을 위해 상경하였다가, 그곳에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후에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이희석(李喜錫)과 안지호(安知鎬)의 지도로 시위를 철저히 준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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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국립 원예 특작 과학원 산하의 농업 연구 기관. 국립 원예 특작 과학원 시설 원예 연구소는 시설 원예 경영비 절감 및 생산성 향상, 기술 개발 등 시설 원예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국립 원예 특작 과학원 시설 원예 연구소는 1948년에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설립된 재단 법인 한국 농업 과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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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숙(金成淑)[1870~1927]은 1870년 12월 4일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는 데 앞장섰고, 함안읍 만세 운동 당시 시위행진을 할 때 선두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행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마산 경찰 서장과 현지 경찰들이 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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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학곤(金學坤)[1889~?]은 함안군 함안면 북촌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병흠(趙丙欽), 조문국(趙文國), 한관렬(韓灌烈) 등을 통해 서울의 독립운동 소식을 접하고,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을 결의하였다. 김학곤은 비봉산 고천제(告天祭)와 태평루의 독립 선언식에 참석한 후 군중을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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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님께 바치는 파수 곶감에 얽힌 전설, 곶감의 유래, 곶감의 생산 과정과 효능 등에 대한 이야기. 한국에서 감에 대한 기록은 1138년(고려 인종 16) 때에 '고욤'에 대한 것이 최초라고 전한다. 또한 고려원종[1284~1351] 시기에 원(元) 나라에서 수입된 『농상집요(農桑輯要)』에도 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성종 때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감을 중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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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에 있는 법정리. 대산리(大山里)는 대상동리와 동지산리가 병합되며 한 글자씩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대산리가 속한 땅은 육 가야(六伽倻) 중 아라가야(阿羅伽倻)에 속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함안군(咸安郡)으로 개칭되었고, 995년(성종 14) 함주(咸州)가 되었다. 대산리는 본래 하리(下里)에 속하였는데, 이후 동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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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1114번지 대사 마을 일대에 위치한다. 대사 마을 일대는 '대사 터[大寺址]'로 추정되는 곳으로 동지산[216.7m]의 남서쪽이며, 함안천을 사이에 두고 조남산과 마주하고 있다. 동지산 남쪽 150m 내외의 산지들에 의해 둘러싸인 곡부의 하단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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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덕암 서원(德巖書院)은 조순(趙純)[?~1398], 박한주(朴漢柱)[1459∼1504], 조종도(趙宗道)[1537~1597]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조순은 고려 말의 인물로 우왕(禑王)의 총애를 받았다. 조순은 왕명으로 요동을 공격할 때에 좌중군(佐中軍)에 임명되어 이성계(李成桂), 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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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건립되었던 서원. 도계 서원(道溪書院)은 이숙(李潚)[1550~1615], 이휴복(李休復)[1568∼1624], 박진영(朴震英)[1569∼1641], 조익도(趙益道)[1585~1624] 등 4명의 공신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이숙은 경상남도 함안 출생으로, 호는 갈촌(葛村)이다. 선조(宣祖) 때 무과(武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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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창건되었던 서원. . 도림 서원(道林書院)은 1702년(숙종 28)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정구는 1586년(선조 19)에 부임하여 1588년(선조 21)까지 함안 수령(咸安守令)으로 재직하면서 조선 시대 최초의 지방지인『함주지(咸州誌)』를 발간하였다. 도림 서원은 1702년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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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있는 저수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미산 지역은 마을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완만한 구릉이 있고, 북쪽으로는 미산들이 좁고 길게 펼쳐져 있으며, 서쪽에 미산 저수지가 있다. 미산 저수지가 위치한 파수리는 함안 곶감의 주 생산지이고, 미산 저수지를 농업용수로 사용하여 함안의 특산물인 곶감이 생산되고 있다. 193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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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경용(朴敬用)[1892~1961]은 1892년 10월 26일 함안군 함안면 북촌동에서 태어났다. 족보에 자는 영순, 박경현으로 올라 있다. 아들은 박상태(朴相兌)·박태봉(朴泰鳳)·박삼용(朴三用), 손자는 박대근(朴大根)·박현근(朴賢根)·박자근(朴自根)·박순근(朴諄根)·박은래(朴恩來)·박용호(朴容護)이다. 박경용은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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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서 가야읍 신음리 못둑골로 넘어가는 고개. 배닿지 고개의 명칭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천지개벽 당시 이 고개를 통하여 배가 넘나들었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기도 하고, 1586년 한강(寒岡)정구(鄭逑)가 군수로 부임하여 이곳을 둘러보고 파수리가 배[舟]처럼 생긴 데다가 물이 차게 되면 이 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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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에 있는 법정리. 봉성리(鳳城里)의 명칭 유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옛 명칭은 향교가 있어 향교동(鄕校洞) 또는 교동(校洞)으로 불리었다. 봉성리가 속한 땅은 육 가야(六伽倻) 중 아라가야(阿羅伽倻)에 속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함안군(咸安郡)으로 개칭되었고, 995년(성종 14) 함주(咸州)가 되었다. 봉성리는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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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봉성리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일대에 펼쳐진 넓은 충적 대지의 중심부에 남북으로 열을 지어 4기가 분포한다.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와, 1997년에 아라가야 향토사 연구회에서 실시한 함안 고인돌 지표 조사에서 4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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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및 조선 시대 유적. 봉성리 유적(鳳城里遺蹟) 중 조선 시대의 열녀비는 1866년(고종 3)에 건립된 것이다. 당시 함안 봉성동에 살고 있던 한덕조의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행적[남편의 병 간호]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이다. 함안~가야 간 도로 확장·포장 공사로 인해 2003년 8월 1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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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봉성리 청동기 시대 무덤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544-1답, 봉성리 290번지, 봉성리 310답~329답에 자리한다.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일대의 충적 대지에 대규모 군집을 이루며 열상으로 위치한다. 봉성리 청동기 시대 무덤군은 지표 조사와 시굴 조사를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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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대한 불교 법화종 소속의 사찰. 봉암사(鳳岩寺)는 1943년 10월에 비구 구성신이 창건하였다. 일설에는 1938년에 창건하였다고도 전한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대웅전이 소실되었고, 1952년 8월에 보살 모란성이 중건하여 한국 불교 태고종에 등록하였다. 1973년 12월 9일 비구 학규가 주지로 부임하여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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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에 있는 법정리. 북촌리(北村里)의 지명은 읍성(邑城) 내에서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명칭으로 추정된다. 북촌리가 속한 땅은 육 가야(六伽倻) 중 아라가야(阿羅伽倻)에 속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함안군(咸安郡)으로 개칭되었고, 995년(성종 14) 함주(咸州)가 되었다. 북촌리는 본래 하리(下里)에 속하였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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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북촌리 고인돌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함읍 우체국 내에 위치한다. 지형적으로는 함안천을 따라 형성된 곡간 평야(谷間平野)에 입지한다. 함안천은 남에서 북으로 흘러 남강에 유입되는 하천으로, 함안천 주변에는 광정리 고인돌군과 괴산리 고인돌, 봉성리 고인돌군 등의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하천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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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성균관 유도회의 함안 지역 지부. 성균관(成均館)은 한일 병합 후 일제에 의해 경학원(經學院)으로 개칭되었다가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성균관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고, 같은 해 10월 전국의 유림 2,500여 명이 성균관 명륜당에 모여 유도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1945년 11월 심산(心山)김창숙(金昌淑)이 전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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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시중(安時中)[1880~1974]은 1890년 12월 20일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과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렬(韓灌烈) 등이 계획하였다. 실질적 지도자는 이희석(李喜錫)으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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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종호(安宗鎬)[1886~1961]는 1886년 4월 24일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손자 안강영(安康榮)이 있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과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렬(韓灌烈) 등이 계획하였다. 함안읍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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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시인이자 정치가. 양우정(梁又正)[1907~1975]은 1907년 12월 19일에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서 아버지 남원 양씨한익(漢益)과 어머니 김해 김씨이춘(二春)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양창준(梁昌俊)이었으나 8·15 광복 전에는 필명으로 양우정(梁雨庭)을 쓰다가, 8·15 광복 후에는 양우정(梁又正)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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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배하러 갔다가 서울의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에 의하여 계획되었다. 거사일은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이었다. 의거 날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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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읍 만세 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일어났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배하러 갔다가 서울의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이 함안군 대산면의 안지호(安知鎬)와 의논하여 계획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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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용우(李龍佑)[1898~1930]는 1898년 12월 7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에서 태어났다. 이용우는 나이 22세에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한 함안 지역 인사인 조한휘(趙漢輝)[한학 교사], 한종순(韓鍾淳)[당시 함안 면장 아들], 박건병(朴鍵秉)[동명 학교 교사] 등에게서 서울의 독립운동에 대해 전해 들었다. 이들은 3월 19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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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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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찬영(李讚榮)[1894~1925]은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국권 회복은 인재 양성에 있다고 보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모의하였다.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함안 지역 인사인 조한휘(趙漢輝)[한학 교사], 한종순(韓鍾淳)[당시 함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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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여선(汝宣), 호는 황곡(篁谷). 할아버지는 해남 현감을 지낸 이순조(李順祖)이다. 아버지는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낸 이사후(李士詡)이고 어머니는 임득번(林得蕃)의 딸 은진 임씨(恩津林氏)이다. 부인은 박윤수(朴允秀)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이칭(李偁)[1535~1600]은 경상남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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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태길(李泰吉)[1920~2014]은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함안 국민학교[현 함안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 사범 학교 심상과에 입학하였다. 대구 사범 학교는 1929년 개교하였는데 민족의식이 남달랐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태길은 4학년이었던 1939년 10월 말에 학년별로 윤독회를 조직하였다. 윤독회에서 민족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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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호정(李鎬正)[1897~1971]은 개항기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중년 이후에는 6·25 전쟁을 겪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역사상 매우 어려운 시기를 살았지만, 학문을 탐구하고 심신을 수양하며 집안과 지역 사회에서 선행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영진(榮珍), 호는 검파(儉坡). 증조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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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종식(張鍾植)[1869~1949]은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함안 지역 인사 한학 교사인 조한휘(趙漢輝)와 이찬영(李讚榮) 등은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하여 3·1 운동을 경험하였다. 이들은 독립 선언문을 들고 함안으로 돌아와서 이희석(李喜錫), 한종순(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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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강제(趙崗濟)[1923~1952]는 1923년 2월 14일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교사가 되기 위해 대구 사범 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본에 대항하는 비밀 결사 조직인 문예부(文藝部)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에 맞섰다. 당시 대구 사범 학교 문예부는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항하여 국학 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된 비밀 결사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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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성윤(趙性胤)[1845~1904]은 함안에서 태어나 함안에서 활동한 학자이다. 과거 시험에는 응시하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학문을 탐구하며 생활 속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한 학자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영순(永純), 호는 광천(廣川). 어계(漁溪)조려(趙旅), 무진정(無盡亭)조삼(趙參)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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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있는 조아 제약의 생산 공장. 조아 제약 함안 공장은 조아 제약이 개발하는 의약품 및 건강 보조 식품 생산을 전담하고, 이를 통해 지역 인력 채용 등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아 제약 함안 공장은 1994년 준공되었다. 1995년 2월 우수 의약품 제조 관리 기준의 적격 업체로 승인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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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출신의 문학 평론가. 석재(石齋) 조연현(趙演鉉)[1920~1981]은 1920년 9월 8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아버지 조문태(趙文台)와 어머니 김복선(金福善)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안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고성 고등 보통학교와 중동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자퇴하고, 배재 고등 보통학교에 편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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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용규(趙龍奎)[1880~1944]는 아들 조을석(趙乙錫), 손자 조현제(趙鉉濟), 증손자 조인래(趙仁來)을 두었다. 조용규가 참여한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장례식과 독립 선언식에 참여하고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 등이 계획하였다. 함안읍 만세 운동의 실질적 지도자는 이희석(李喜錫)으로 안지호(安知鎬)와 함께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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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배하러 갔다가 서울의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에 의하여 계획되어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며 일어났다. 오후 2시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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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 함안 지역은 일제 식민지 지배 체제에서 독립운동이 힘차게 지속적으로 일어난 지역이다. 1919년 함안읍 만세 운동, 군북 시장 만세 운동 등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났고, 1920년대에는 함안 형평사, 신간회 함안 지회 등을 통한 항일 사회 문화 활동이 활발하였다. 또한 농민 조합 등을 통한 반일 활동도 빈번하였다. 조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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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읍 의거는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대산면에 사는 안지호(安知鎬)와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면서 거행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오후 2시 3,0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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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함안읍 만세 운동은 서울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 등이 대산면에 사는 안지호(安知鎬)와 3월 19일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면서 거행되었다. 3월 19일 정오, 읍내 봉성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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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있는 콘크리트 펌프카 부분품 제조업체. 케이씨이피 중공업은 콘크리트 펌프카 부분품의 생산과 함께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인재를 채용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케이씨이피 중공업은 2002년 1월 케이씨이피 산업으로 설립되었다. 2002년 5월 법인으로 전환하며 케이씨이피로 개칭되었고,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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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일대에서 재배 또는 사육되어 생산되는 농축산물과 그 가공품 일체. 함안군은 낙동강(洛東江)과 남강(南江) 연안에 인접해 있고, 토양이 비옥해 농업이 발전한 지역이다. 1587년(선조 25)에 편찬된 『함주지(咸州誌)』를 통해서 당시 함안 지역이 광활한 평야를 갖추고 있었으나 지대가 낮아 홍수의 피해가 잦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둑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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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있는 농공 단지. 파수 농공 단지(巴水農工團地)는 농외 소득 증대 및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하여 사업비 34억 3000만 원을 투입하여 조성되었다. 1989년 9월 9일에 농공 단지로 지정되었고, 1990년 5월 11일에 착공하였으며, 1991년 4월 12일에 준공되었다. 파수 농공 단지의 총면적은 16만 6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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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에 있는 법정리. 파수리(巴水里)가 속한 땅은 육 가야(六伽倻) 중 아라가야(阿羅伽倻)에 속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함안군(咸安郡)으로 개칭되었으며, 995년(성종 14) 함주(咸州)가 되었다. 파수리는 본래 상리에 속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부(府)·군(郡)·면(面) 통폐합으로 산내면과 병합되어 함안군 읍내면 파수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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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에 보이는 군내의 주요 도로망을 살펴보면 동쪽으로 창원 경계까지 25리[약 9.82㎞]이고, 서쪽으로 진주 경계까지 31리이며, 남쪽으로 진해 경계까지 27리[약 12.17㎞]이고, 북쪽으로 의령 경계까지 38리[약 14.92㎞]이다. 군외(郡外)로는 서울까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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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관렬(韓灌烈)[1892~1950]은 1892년 12월 18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한종호(韓鍾鎬)가 있다. 한관렬은 고종의 장례에 참배하기 위해 이찬영(李讚榮)·한종순(韓鍾淳)·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과 함께 상경하였다. 서울에서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하여 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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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일동(韓一東)[1891~1934]은 1891년 1월 27일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함안 장날에 발생한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함안읍 만세 운동은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여하였다가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와 만세 시위를 경험한 이들이 귀향한 뒤, 함안에서 만세 운동을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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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종순(韓鍾淳)[1893~1932]은 1893년 11월 2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조한휘(趙漢輝) 등이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한 뒤, 고향으로 귀향하여 함안면에서 만세 운동을 시도하였다. 이에 한종순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3월 19일 함안 장날 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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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한종헌(韓鍾憲)[1898~1931]은 1898년 4월 3일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한기중(韓基重)이 있다. 1919년 고종의 장례에 참배하기 위해 함안에서는 이찬영(李讚榮)·한종순(韓鍾淳)·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 등이 상경하였다. 그들은 서울에서 독립 선언식과 독립 만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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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교육 목표는 '큰 꿈을 이루어 가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이고, 교훈은 '성실, 창의'이다. 1951년 3월 7일 설립된 동신 학원에 의해 1956년 5월 30일 함성 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이후 학생들이 계속 늘어 1971년 2월 5일 12학급을 인가받았으며, 1977년에는 12학급에 756명의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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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 마을의 무진정 앞에서 4월 초파일에 열리는 민속놀이. 함안 낙화 놀이는 함안면 괴산리 괴항 마을의 무진정(無盡亭) 앞에 위치한 연못인 이수정(二水亭) 일원에서 매년 4월 초파일에 열리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줄불 놀이, 이수정 낙화 놀이. 함안 읍성 낙화 놀이 등이라고도 한다. 함안 낙화 놀이는 조선선조 때 함안 군수로 부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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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조 삼존 불상.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咸安大山里石造三尊像)은 대사(大寺)골로 불리는 마을 앞에 있는데 2013년에 보호각을 조성하여 불상을 보호하고 있다. 본존불과 좌우 보살상은 하나의 삼존불로 보기는 어렵고, 2구의 보살상은 손 모양만 다를 뿐 조각 수법이 비슷하다. 본존불의 높이는 86㎝이며, 머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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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무진정(無盡亭)은 조선 시대 문신인 무진(無盡)조삼(趙參)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567년(명종 22) 후손들이 세웠다. 조삼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 하였다. 조삼은 1483년(성종 14)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7년(중종 2)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경상도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목사와 사헌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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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민속 박물관. 함안 민속 박물관은 우리의 뿌리를 알고,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자 2001년 11월 8일 함안 초등학교 부지 내에서 개관하였다. 함안 민속 박물관은 2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층과 2층에 각각 전시실이 있고, 야외 전시장도 따로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선조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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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 백암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조 여래 좌상. 함안 백암사 석조 여래 좌상(咸安白岩寺石造如來坐像)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백암사(白岩寺)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불신과 팔각 대좌(臺座)가 남아 있는데 본존상은 마모가 심하고 보수를 하여 원래의 형상 파악이 어려운 반면, 대좌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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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와 산인면 입곡리에 걸쳐 있는 신라 시대의 산성. 함안 성점산성(咸安城岾山城)의 건립 경위를 알려 주는 기록은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을 참고할 때 조선 전기까지는 성곽의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되는 1587년(선조 20)에는 고적조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587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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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탑은 원래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 스투파에서 유래하였고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유품과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성스러운 구조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적 조건상 목탑의 형태를 모방한 석탑이 가장 크게 유행하였다. 초기에는 마치 분묘와 같은 복발형(伏鉢形)이었으나 점차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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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교육 목표는 '지혜로운 어린이, 예절 바른 어린이, 조화로운 어린이, 꿈을 키우는 어린이'이다. 교훈은 '참되고 슬기롭고 튼튼한 어린이'이다. 1907년 8월 19일 사립 찬명 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08년 7월 1일 설립되었다. 1911년 5월 6일 함안 공립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6월 1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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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 마을에서 매년 4월 초파일에 열리는 불꽃놀이. 함안 낙화 놀이는 매년 4월 초파일에 괴산리 괴항 마을의 무진정(無盡亭) 일원에 낙화봉을 매달아 불을 붙여 구경하는 민속놀이이다. 낙화 놀이의 사전적 정의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행하는 액막이적 성격의 불꽃놀이'이다. 지역에 따라 '낙화유', '낙화불 놀이', '줄불 놀이'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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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는 법정면. 함안면(咸安面)은 함안군의 옛 군청 소재지였으며, 지금의 함안면은 상리 전부와 하리의 일부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리면과 산내면을 병합하여 함안군 읍내면으로 개편되었으며, 1918년 함안군 함안면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청사가 소실되어, 1954년 11월 12일 함안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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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함안면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함안군을 구성하고 있는 2개 읍[가야읍·칠원읍], 8개 면[함안면·군북면·법수면·대산면·칠서면·칠북면·산인면·여항면] 중에서 함안면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다. 함안면 사무소는 함안면의 행정 능률 및 주민 편의 도모와 함께 주민 등록 관리 업무, 주민 행복 지원 업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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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있는 경전선의 기차역. 일제 강점기 함안군의 중심지였던 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일대에 경전선(慶全線)이 부설될 예정이었으나 당시 함안군의 주요 사족(士族)들의 반대에 부딪혀 함안군 가야읍 일대에 건설되었다. 이에 1923년 12월 1일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에서 보통역으로 함안역(咸安驛)이 영업을 시작하였다. 1965년 2월 28일 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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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신 소속 교회. 함안읍 교회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영혼 구원, 청소년 교육을 통한 지역 봉사, 미자립 교회 및 선교사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함안읍 교회는 1906년 2월 8일 사립 안신 학교(私立安信學校)와 같이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903번지에서 설립되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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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읍내 장날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 함안의 3·1 운동은 경상남도 지역에서 최초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규모와 만세 운동 횟수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함안에서 3·1 운동은 3월 9일 칠북면연개 장터 만세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경상남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3·1 운동이었다. 이후 3월 12일과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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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와 북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읍성. 함안읍성(咸安邑城)은 연해 읍성으로 1510년(중종 10)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성되었으며, 1555년(명종10)의 증축으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읍성의 규모와 구조, 시설에 대해서는 『함주지(咸州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초축 시의 규모는 5,160척[1.56㎞], 증축 시의 규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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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관립 교육 기관. 함안 향교(咸安鄕校)는 1392년(태조 원년)에 홍문관(弘文館)의 인가를 받아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청곡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설이 있으나 사료적인 근거가 불확실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봉성동의 악어담에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