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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785
한자 朴任龍
영어공식명칭 Bak Imry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639년 - 박임룡 군기시 주부 재직
활동 시기/일시 1641년 - 박임룡 적성 현감 파직
활동 시기/일시 1643년 - 박임룡 적성 현감 직첩 돌려받음
활동 시기/일시 1662년 - 박임룡 월곶 첨사 부임
출생지 함안군 - 경상남도 함안군
거주|이주지 함안군 - 경상남도 함안군
부임|활동지 적성현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성격 무신
성별
본관 밀양
대표 관직 적성 현감

[정의]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에 추증된 박종수(朴宗秀)이고, 할아버지는 형조 판서에 추증된 박오(朴旿)이다. 아버지는 선무원종 2등 공신인 박진영(朴震英)이다.

[활동 사항]

박임룡(朴任龍)은 박진영의 서자로 태어났다. 1639년(인조 17) 군기시 주부로 재직하며 군기(軍器)와 성곽의 보수에 공을 세웠으며 화약 제조법에도 재주를 보였다. 매제 남두병(南斗柄)이 자신의 상관인 첨정으로 군기시에 부임했어도 관례상 상피는 하급자의 몫이었으나 군기시 도제조의 장계로 남두병을 다른 관서로 보내었다. 그해 적성 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641년(인조 19)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사간원은 "박임룡의 사람됨이 어리석고 외람된 데다 글도 알지 못하여 세금을 부과하고 차역하는 일을 전부 아랫사람에게 위임하였다. 그뿐 아니라 서울에 있으면서 죄를 범하고 도망친 간사한 아전을 관아에 들여 두고서 크고 작은 정령을 하나같이 그의 말에 따르고 있다."고 그를 탄핵하였고, 인조는 이를 윤허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643년(인조 21) 다시 직첩을 돌려주었다. 1662년(현종 3) 월곶 첨사(月串僉使)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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