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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705
한자 金昌稷
영어공식명칭 Gim Changjik
이칭/별칭 김성직(金性稷),형국(馨國),구성 효자(龜城孝子),귀천(龜川)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익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2년 10월 29일[음력]연표보기 - 김창직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37년연표보기 - 김창직 사망
출생지 칠원현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거주|이주지 칠원현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수학|강학지 칠원현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묘소|단소 김창직 묘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리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김해

[정의]

개항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초명은 성직(性稷), 자는 형국(馨國), 호는 귀천(龜川). 시조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이며, 고려 판도판서 국자사를 지낸 김관(金管)의 후손이다. 삼현파이며 절효 선생(節孝先生)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기도 하다. 6대조 김선홍(金善弘)이 창원에서 칠원으로 이거하면서 대대로 칠원에 살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응찬(金應瓚)이고, 할아버지는 김병문(金秉文)이다. 아버지는 덕전 참봉을 지낸 난사(蘭史)김기욱(金淇郁)이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활동 사항]

김창직(金昌稷)[1872~1937]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자질이 남달라서, 집 안에 선생을 모시고 처음에 통사(通史)를 배웠는데 어느 날, “이 책에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만 있고, 자식으로서 부모를 모시는 일에 대한 내용이 없으니, 아이들이 배울 책이 아닌 듯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아버지가 『소학(小學)』을 가르치게 하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어릴 적부터 집안 대소사를 돌보았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정성을 다해 상례를 치렀고 매일 성묘를 하였다. 그런데 새벽이 되면 어디선가 개가 한 마리 나타나 앞장서 가면서 풀잎에 맺힌 이슬을 털어 김창직의 옷이 젖지 않도록 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탄복하면서 그 길을 다듬어 주고 ‘효자로’라고 이름 붙였다.

김창직은 아우 김창엽이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자 남은 두 조카를 지극히 보살폈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극진히 받들면서 대소변 시중까지 들었고, 탕약 달이는 일과 빨래도 자신이 직접 도맡아서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미 나이가 많았음에도 여전히 극진히 상례를 행하였다. 아버지의 상 이래로 무려 13년 동안 슬피 곡하고 성묘를 행하느라 그가 꿇어앉았던 자리에는 풀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김창직이 세상을 떠나던 날도 돌아가신 어머니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5권 2책의 『귀천 유집(龜川遺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리저소산(楮沼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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